축구 이야기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10인

세레브로 2024. 8. 8. 15:51
728x90
반응형
SMALL

 
 

 
*작성자인 저의 주관적인 선정입니다.
*순서는 순위가 아니며, 시대순으로 나열한 것입니다.
*기록은 주로 트랜스퍼마크트를 참고했습니다.
 

 


 
 

코치시 산도르 (Kocsis Sándor)

 

대회: 1954 스위스 월드컵 (준우승)
스탯: 5경기 11골 2어시스트
업적: 실버볼, 득점왕
 
축구팬이라면 '매직 마자르'라는 말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매직 마자르'란 1950년대 세계 축구의 패권을 주름잡았던 헝가리 국가대표팀의 별명이다. A매치 32경기 연속 무패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매직 마자르의 중심엔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푸슈카시 페렌츠뿐 아니라 '황금의 머리'라 불리던 한 스트라이커가 있었다. 그리고 1954 스위스 월드컵은 이 스트라이커, 코치시 산도르의 무대였다.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한국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서독을 상대로 4골을 폭격하며 매직 마자르의 위용을 널리 알린 코치시는 토너먼트에선 푸슈카시가 부상으로 이탈한 치명적인 상황에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8강 브라질전에서 멀티골을, 4강 우루과이전에서도 다시 한번 멀티골을 득점하며 에이스로서 군림했다. 결승전에선 서독을 상대로 아쉽게 패배했지만, 이 당시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가히 스트라이커의 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린샤 (Garrincha)

 

대회: 1962 칠레 월드컵 (우승)
스탯: 6경기 4골 2어시스트
업적: 골든볼, 득점왕
 
1962 칠레 월드컵을 앞두고 월드컵 2연패를 노리던 '축구 제국'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는 누구였을까? 당연하게도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펠레였다. 그렇기에 해당 대회가 시작하기 전 모두의 관심은 펠레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조별리그 2차전에서 부상으로 이탈하게 되며 브라질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 위기의 순간에 브라질의 구세주로 떠오른 '작은 새'가 있었으니, 그가 가린샤이다.
 
펠레가 빠진 당시 월드컵은 가린샤의 무대로 바뀌었고, 조별리그 3차전에서 아마리우두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한 것을 시작으로 토너먼트에선 더욱 각성하여 잉글랜드전 2골과 칠레전 2골로 토너먼트에서만 4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가린샤는 이 대회에서 골든볼과 득점왕을 모두 석권하며 최초의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고, 펠레가 없으면 자신이 왕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당시 가린샤가 대회에서 기록한 드리블 횟수가 6경기 62회인데, 그가 얼마나 미쳐날뛰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다.
 
 
 
 

에우제비우 (Eusébio)

 

대회: 1966 잉글랜드 월드컵 (3위)
스탯: 6경기 9골 1어시스트
업적: 브론즈볼, 득점왕
 
1960년대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펠레를 상대로 라이벌리를 형성하며 유럽의 자존심을 지켰던 '흑표범' 에우제비우도 이 주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선수이다. 그가 참가한 1966 잉글랜드 월드컵은 여러 오심들과 남미 기자들을 차별 대우한 문제 등으로 여러모로 말이 많던 대회였다. 에우제비우 본인도 주심의 판정에 대해 불만 섞인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논란이 많던 대회 속에서도 전혀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었으니, 그가 이 대회 최고의 선수였다는 것이다.
 
에우제비우는 이전까지 세계 대회에서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한 국가였던 포르투갈을 이끌고 조별리그에서 헝가리전 어시스트와 볼가리아전 1골을 기록, 그리고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을 상대로 멀티골을 작렬시키며 위대한 서막을 알렸다. 그리고 토너먼트에 들어서며 첫 상대로 북한을 만나게 되는데, 전반 초반에만 3골을 먹히며 3-0으로 탈락할 위기에 쳐했지만, 혼자서 4골을 폭격하며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하드캐리를 보여주었다. 최종 성적은 3위로 마무리했지만, 에우제비우 개인으론 브론즈볼과 득점왕을 거머쥐었다. 이 당시 골든볼과 실버볼은 우승국인 잉글랜드의 바비 찰튼과 바비 무어에게 수여됐지만, 실질적인 대회 MVP는 당연코 에우제비우였다.



 

펠레 (Pele)

 

대회: 1970 멕시코 월드컵 (우승)
스탯: 6경기 4골 6어시스트
업적: 골든볼
 
1970 멕시코 월드컵이 펼쳐질 당시의 브라질엔 자이르지뉴, 토스탕, 히벨리누 등 왕이라 불릴만한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 선수들마저도 이 선수의 자리는 결코 넘볼 수 없었다. 왕들의 왕, '축구 황제' 펠레이다. 펠레는 이 대회에서 이전과는 달리 조금 더 후방으로 쳐져 팀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했다. 파괴적인 드리블과 득점력은 이전보다 줄어들었지만, 노련함이 한층 더해져 말 그대로 '축구의 신'과 같은 퍼포먼스를 보였다.

펠레는 조별 리그에서만 3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그가 이끄는 브라질 국가대표팀은 조별 리그 3전 전승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였다. 토너먼트에서도 펠레와 브라질의 퍼포먼스는 계속 되었는데, 페루와 우루과이를 차례로 격파하고, 결승전에선 최강의 방패인 이탈리아를 상대로 4대1 대승을 거두며 전승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펠레는 결승전에서만 1골 2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대회 기간 동안 6경기에 출전해 4골 6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총 28회의 찬스메이킹을 기록했다. 자신의 장엄했던 대서사시의 종지부를 찍은 펠레는 마침내 진정한 G.O.A.T의 자리에 올라섰다.
 
 

 

요한 크루이프 (Johan Cruyff)

 

대회: 1974 서독 월드컵 (준우승)
스탯: 7경기 3골 3어시스트
업적: 골든볼

'토털 풋볼'이라는 용어는 축구팬이라면 모르는 게 힘들 정도로 축구 역사에 있어서 혁명과도 같은 전술이다. 그리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 이 혁명을 이끈 중심에는 당시 네덜란드의 감독이었던 리누스 미헬스와 그의 페르소나이자 필드 위의 사령관, 요한 크루이프가 있었다. 비록 그들의 혁명은 헬무트 쇤 감독과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이끄는 서독 국가대표팀에 의해 준우승으로 마무리되었지만, 크루이프가 이 대회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 누구보다 위대했고 빛났다.
 
팀 전체의 플레이를 쥐락벼락한 크루이프는 7경기에 출전해 3골 3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총 36회의 찬스메이킹과 드리블 성공 34회, 그리고 리커버리 47회를 기록하는 등 공수 모든 면에서 말도 안 되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 당시 서독과의 결승전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은 네덜란드의 승리를 점쳤다. 대회가 열리기 전까진 서독을 더 높이 보는 의견이 많았으나 크루이프와 그가 이끄는 네덜란드가 사람들의 시선을 바꾼 것이다. 결과적으론 서독에게 결승전에서 패배했지만, 크루이프 본인만큼은 서독의 에이스인 베켄바우어를 제치고 골든볼과 그 해 발롱도르를 모두 석권하며 선수로서의 승리를 거두었다.
 
 

 

마리오 켐페스 (Mario Kempes)

 

대회: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우승)
스탯: 7경기 6골 2어시스트
업적: 골든볼, 득점왕

1986 마라도나와 2022 메시 이전 일찌감치 하드캐리로 아르헨티나를 정상에 올려놓은 한 선수가 있다. 당시 이탈리아의 수비수인 안토니오 카브리니는 이런 말을 남겼다. "아르헨티나의 우승이 승부조작이었다는 말인가? 그렇게 단정 짓기엔 마리오 켐페스의 활약이 너무나도 훌륭하지 않았나?"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은 승부조작과 편파판정 등으로 역사상 최악의 대회 중 하나라 평해진다. 하지만, 카브리니의 말처럼 마리오 켐페스의 활약만큼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켐페스가 속한 아르헨티나는 조별 리그에서 2승 1패를 기록하며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고, 켐페스 본인은 무득점에 그쳤다. 하지만, 진정한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폴란드전과 페루전에서 각각 2골씩 득점하며 팀의 결승행에 1등 공신으로 활약했고,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서도 선제골과 연장 결승골을 모두 득점하며 아르헨티나에게 첫 월드컵 트로피를 선물했다. 켐페스는 이 대회에서 18회의 찬스메이킹과 43회의 드리블 성공을 기록했고, 골든볼과 득점왕을 모두 거머쥐며 월드컵 역사에 단 3명밖에 없는 '트리플크라운'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되었다.
 
 
 
 

파올로 로시 (Paolo Rossi)

 

대회: 1982 스페인 월드컵 (우승)
스탯: 7경기 6골 1어시스트
업적: 골든볼, 득점왕
 
현시대의 축구팬들은 파올로 로시를 어떻게 평가할까?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로시의 클럽 커리어를 봤을 때 그는 역대는 물론이고 당대에도 정상급 선수는 아니었다. 1부 리그에서 20골 이상을 넘긴 적이 단 한 번밖에 없는 그가 어떻게 오늘날에는 이러한 평가를 받을까? 그 이유가 바로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의 경이로운 활약 때문이다.
 
로시는 1차 조별 리그에선 무득점에 그치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2차 조별 리그부턴 득점의 신이 영접하여 8강 브라질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 우승 후보 1순위인 브라질을 탈락시키며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선사했다. 그리고 폴란드와의 4강전에선 멀티골을, 서독과의 결승전에서도 1골을 기록하며 이탈리아에게 3번째 월드컵 우승을 선물했다. 로시는 골든볼과 득점왕을 모두 차지하며 '트리플크라운'의 주인공이 됐고, 그 해 발롱도르와 옹즈도르,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등 각종 개인상을 모두 차지했다. 이것이 엄청난 이유가 승부조작 스캔들로 인한 2년 출전정지로 정규리그에선 고작 3경기에 출전했기에 사실상 월드컵에서의 활약만으로 이 모든 개인상들을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디에고 마라도나 (Diego Maradona)

 

대회: 1986 멕시코 월드컵 (우승)
스탯: 7경기 5골 5어시스트
업적: 골든볼
 
드디어 이 분의 차례가 왔다. 이 주제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이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의미가 있을까.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의 로시에게 득점의 신이 영접했다면,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의 디에고 마라도나에겐 축구의 신이 영접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축구는 팀 스포츠이다. 선수가 혼자 힘으로 그것을 깨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가능하다고 답한다.
 
마라도나는 이 대회에서 사실상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을 보여주었는데, 그가 나선 모든 경기들이 경이로웠지만 후대에 특히 기억되는 경기가 8강 잉글랜드와의 경기이다. '신의 손'이라 불리는 핸드볼 골을 넣으며 논란의 중심이 됐지만, 동시에 '20세기 최고의 골'이라 불리는 50m 단독 드리블 골까지 성공시키며 전 세계인들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당시 잉글랜드 선수들은 "신의 손 골이 무효라도 어차피 마라도나한테 골을 먹고 졌을 것이다."라고 경기 후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마라도나는 당연하게도 대회 골든볼을 수상했으며, 세부 스탯 부분에서도 53회의 드리블과 27회의 찬스메이킹을 성공시켰고, 53회의 파울을 얻어냈다. 수비적인 부분에서도 태클 성공 11회와 리커버리 26회를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했다. 마라도나는 이 대회 이후 펠레의 반열에 올랐으며, 아르헨티나에선 국민영웅으로 추앙받았고 자신의 종교까지 만들어지게 된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11명이 하는 팀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벗어난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 -마라도나의 잉글랜드전 50m 단독 드리블 골을 본 뒤 아르헨티나 해설자가 외친 말-
 
 

 

호마리우 (Romário)

 

대회: 1994 미국 월드컵 (우승)
스탯: 7경기 5골 3어시스트
업적: 골든볼
 
축구를 상징하는 국가인 브라질에선 펠레 이후로도 여러 뛰어난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지쿠가 이끄는 '황금의 사중주' 브라질 국가대표팀은 순수 전력면에서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 보아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국제 대회에선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며 많은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목말라 있던 브라질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영광의 시대를 안겨준 천재가 있었으니, 그가 호마리우이다.
 
호마리우가 이끄는 브라질 국가대표팀은 조별 리그부터 승승장구했고, 호마리우는 그 누구보다 빛났다. 2선에서 플레이메이킹까지 도맡으며 '브라질의 마라도나'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골이면 골, 연계면 연계, 드리블이면 드리블, 모두 최고 수준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호마리우는 이 대회에서 결승 이탈리아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였고, 단순히 공격 포인트만 기록한 것이 아닌 결승골 3번, 동점골 1번, 그리고 결승골 어시스트 1번까지 순도 만점의 활약을 선보였다. 호마리우는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조를 제치고 골든볼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FIFA 올해의 선수에도 선정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리오넬 메시 (Lionel Messi)

 

대회: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
스탯: 7경기 7골 3어시스트
업적: 골든볼

축구에 관심이 1도 없는 사람이라도 이름만큼은 모르는 것이 더 어려운 선수, 리오넬 메시. 21세기를 넘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 평가받는 메시에게도 커리어에서 오점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국대 무관'이라는 점. 국가대표팀에서의 뛰어난 활약에도 트로피와는 인연이 없던 그였으나 2021 코파 아메리카를 기점으로 국대 무관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메시는 여전히 배고팠다. 축구선수로서 들어 올릴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트로피, 월드컵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 월드컵 트로피를 향해 자신의 동료이자 가족과 같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과 함께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까지 메시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 메시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보여준 퍼포먼스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기대를 안고 조별 리그로 향하게 된다. 조별 리그 1차전 사우디 아라비아를 상대로 경기가 펼쳐졌는데, 놀랍게도 아르헨티나가 충격의 패배를 당한다. 이 경기 이후 아르헨티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잠깐 달라졌지만, 이 경기는 그저 메시의 숨 고르기에 불과했다. 2차전 멕시코전에서 중거리골로 팀을 구해낸 것을 시작으로 승승장구하며 결승까지 향했고,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한다. 메시는 이 대회에서 토너먼트 전경기 골과 POTM 달성이라는 엄청난 대기록을 써냈고, 골든볼과 실버부트를 수상한다. 진정한 라스트 댄스가 무엇인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며 위대한 펠레의 자리에 마침내 올라섰다.
 
 
 
 

Honorable Mention

 
 
1930 우루과이 월드컵 호세 나사치 (José Nasazzi)
 
1950 브라질 월드컵 지지뉴 (Zizinho)
 
1958 스웨덴 월드컵 지지 (Didi)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로타어 마테우스 (Lothar Matthäus)
 
2002 한일 월드컵 호나우두 (Ronaldo)
 
2010 남아공 월드컵 차비 에르난데스 (Xavi Hernández)
 
2014 브라질 월드컵 아르연 로번 (Arjen Robben)
 
2018 러시아 월드컵 루카 모드리치 (Luka Modrić)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