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로는 누가 있을까
여러 선수가 있겠지만, 2010년대로 한정한다면 메시와 호날두 다음으로 거론되는 전설적인 선수가 있다.
FC 바르셀로나가 트레블 2회와 6관왕이라는 대업적을, 스페인 국가대표팀이 전무후무한 메이저대회 3연패를 이룰 수 있었던 건 차비와 함께 이 선수가 존재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최전성기 중심에 있었던 미드필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이다.
그렇다면 이니에스타가 어떠한 능력들을 가졌기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선수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대다수의 축구팬들이 알다시피 이니에스타의 최고 장점은 온 더 볼이다. 그의 파트너인 차비가 패스플레이와 전술이해도를 바탕으로 경기를 조립해 나갔다면, 이니에스타는 직접 공을 전방으로 전진시켜 경기를 풀어내는데 탁월한 선수이다.
특히나 그의 전맥특허 기술인 라 크로케타, 팬텀 드리블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팬텀 드리블을 구사하는 선수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이니에스타의 팬텀 드리블이 최고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그가 구사하는 팬텀 드리블은 굉장히 미세한 컨트롤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원래 팬텀 드리블 자체가 매우 고도의 컨트롤이 필요한 기술이고 그만큼 난이도가 굉장한 기술이다. 하지만 이니에스타는 그런 팬텀 드리블을 구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을 매우 미세하게 컨트롤하여 구사한다. 보통의 선수라면 팬텀 드리블을 구사할 때 공을 이동시켜 반대발로 잡는 그 순간에 집중하기에 공이 자신이 원래 드리블하던 방향과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니에스타는 앞서 말했듯이 공을 매우 미세하게 컨트롤하여 반대발로 잡는 그 순간 공이 자신이 원래 드리블하던 방향과 일직선이 되도록 만든다. 좁은 공간에서도 순간의 두뇌회전으로 최적의 움직임을 구사해 딱 필요한 만큼 공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원래 드리블하던 방향 그대로 바로 공을 전진시킬 수 있어서 템포도 죽이지 않고 매우 효율적인 드리블을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이니에스타의 드리블을 보면 그가 가속과 감속 모두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천히 드리블하다가도 갑자기 치고 나가거나, 빠르게 가다가도 한순간에 느리게 가면 마킹을 하는 선수 입장에선 이니에스타가 어떤 식으로 드리블을 할지 예측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가속만 잘하는 선수라면 미리 달려갈 방향을 예측해 막으면 되지만, 이니에스타처럼 빨리 가다가도 갑자기 느리게 가면 그 순간 타이밍을 뺏기기 일쑤였다.
또한 이니에스타는 순간의 창의성이 굉장히 뛰어났기 때문에 드리블을 할 때도 수비가 어떻게 행동할지 미리 예측하여 상대가 예상치도 못한 곳으로 드리블을 했다. 바로 밑에 나오는 영상에서도 보통의 선수라면 드리블하는 방향 그대로 어깨 싸움을 하면서 공을 몰고 가겠지만, 이니에스타는 상대가 자신이 가는 방향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보이니 바로 상대가 예상하지도 못한, 보는 이들도 예상하지 못한 공간으로 공을 이동시켜 버린다.
이니에스타는 드리블 외에도 미드필더답게 패스에 관해서도 당대 최고 중 하나였다. 비록 전성기 시절 파트너인 차비가 역대 최고 중 하나라 불릴 정도의 패스 능력을 가지고 있어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있지만, 이니에스타도 당대 굉장한 패스마스터였다. 그리고 이런 패스 능력을 바탕으로 연계플레이를 주도하기도 했다.
넓은 시야를 활용해 침투하는 동료에겐 지체 없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패스를 보내주었고, 반대편으로 한 번에 넘겨주는 롱패스도 일품이었으며 상대가 압박을 강하게 할 땐 좋은 위치에 있는 팀원에게 공을 완벽히 전달하고, 또 받기를 반복하며 빠른 패스플레이로 압박을 풀어 나왔다.
이니에스타의 패스 능력이 뛰어난 이유는 그도 차비처럼 공을 받기 전에 동료의 위치를 스캔하기 때문이다. 미리 압박에서부터 자유로운 동료를 파악하고 있기에 팀원들과의 유기적인 패스플레이와 찬스메이킹이 가능한 것이다.
그의 패스 능력이 더 빛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앞서 온 더 볼에서도 말한 것처럼 그의 뛰어난 창의성 때문이다. 차비가 미리 경기를 조립해 놓고 그 위에서 패스플레이를 주도한다면, 이니에스타는 순간의 창의성으로 상대가 예상하지 못하는 곳으로 공을 보내는데 탁월하다.
상대 입장에선 패스를 주기 쉬운 공간을 발견하다면 그 공간에 패스가 오지 못하도록 막으려 하는데, 이니에스타는 상대가 막을 생각도 못한 공간으로 공을 보내고, 빠른 공격 전개 시에는 이따금씩 창의적인 힐패스나 원터치 패스를 선보이거나 아니면 공을 그대로 흘려 빠른 템포를 유지한다. 그리고 굉장히 이타적인 선수라 박스 안에서도 동료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위치에 있다면 망설임 없이 공을 전달한다.
그의 또 다른 장점은 결승전에 강하다는 것인데, 유로 2008과 08-09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선 MOM급의 활약을 보여주었고 2010 월드컵에선 결승전에서 MVP와 결승골을 득점, 유로 2012 결승전에서도 MOM과 결승골을 득점, 14-15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선 MOM, 10-11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선 메시와 차비 다음가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16과 2018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도 MOM에 선정되었다.
이처럼 이니에스타의 대표적인 장점을 알아보았는데, 여기서 끝난다면 그의 위상을 표현하기에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간에선 이니에스타를 두고 굉장히 유니크한 선수라고 말한다. 드리블과 패스가 장점인 미드필더들은 몇몇 있는데 그가 그중에서도 유니크하다고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기본적으로 미드필더가 1대 다수를 선호할 정도의 드리블 능력과 웬만한 월클들보다 뛰어나 패스 능력을 둘 다 가진 것만으로도 유니크한 유형인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미드필더임에도 측면지향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니에스타의 히트맵인데 좌측면에서 뛴 빈도가 매우 많음을 볼 수 있다. 이니에스타는 다른 미드필더들과 다르게 중원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보다 측면으로 많이 이동해 자칫 윙어처럼 보일 수 있는 플레이를 한다. 그의 드리블이나 탈압박도 측면에서 많이 선보인다.
이러한 플레이로 인한 이점은 미드필더지만, 뛰어난 드리블 능력과 측면지향적 움직임으로 한쪽 측면을 홀로 담당할 수 있어서 전술적으로 활용가치가 굉장히 크다는 것이다.
보통은 측면과 중앙을 담당하는 선수가 나뉘어 있는 반면, 이니에스타는 혼자서 중원과 측면을 오가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2인분이 가능한 선수이다. 그렇기에 이니에스타가 뛰는 좌측보다 우측에 더 힘을 실을 수 있고 선수를 기용하는 데 있어 폭이 더 넓어진다는 이점이 있다.
선수 한 명이 좌측면이랑 중원을 모두 오가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다수가 가서 막으려 하면 개인기량으로 유유히 빠져나와서 막기도 어려운데, 어떻게든 막으려 하면 곧 우측면을 비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직력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시 메시와 이니에스타의 조합이 역대급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수가 한 명을 막기도 버거운데 그게 두 명씩이나 있으니.
이러한 측면지향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스페인 국대에서는 아예 윙어로 기용되었다. 거기서도 당연히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니에스타가 윙어로 기용된다면, 곧 중원에서의 수적우위라는 이점을 얻을 수 있는데
이니에스타는 측면지향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만 엄연히 미드필더이고 미드필더의 기본 소양인 패스와 시야 같은 능력들도 최고 수준으로 갖추고 있다. 그래서 공격 시에는 측면에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교란하고 찬스를 만들어내지만, 경기 중에 마치 미드필더처럼 배치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중원에는 선수가 4명이 되고 곧 3미들을 사용하는 팀을 상대로 중원에서의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4미들을 들고 나온다면 그 전술을 카운터 칠 수 있다.
유로 2012 당시 결승전에서 이탈리아가 스페인 미드진을 상대로 수적우위를 점하려고 4미들 전술을 들고 나왔지만, 측면에 있던 이니에스타와 다비드 실바가 중원으로 내려오며 오히려 본인들이 중원에서의 수 싸움에 밀리게 되면서 전술싸움에서 완패하게 된다.
마무리
지금까지 이니에스타가 위대한 미드필더인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다. 여담으로 필자의 블로그 이름인 세레브로도 이니에스타의 별명인 cerebro(두뇌)에서 따왔다(...)
세계 최고의 명장인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차비 에르난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에게 밀려 은퇴했지만, 너는 이니에스타에게 밀려 은퇴할 것이다."
실제로 차비와 이니에스타는 펩의 말과 다르게 축구사에 길이 남을 미드필더 듀오로 거듭난다. 하지만 그만큼 이니에스타의 재능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말이다.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의 최고 황금기를 이끈 전설적인 선수. 그가 없었다면 과연 두 클럽의 황금기도 있었을까
현재 이니에스타는 J리그의 비셀 고베와의 계약이 끝나 자유계약 신분이 되었다. 그가 앞으로 어느 팀으로 이적할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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