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빛낸 선수들

네덜란드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 Top 10

세레브로 2023. 12. 2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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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에 앞서

 

  • 작성자인 저의 주관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기록은 트랜스퍼마크트, 위키피디아, 해외 칼럼 등을 참고했습니다.
  • 기록은 12월 25일 기준입니다.
  • 피드백은 적극 환영입니다.


 

생년월일: 1951. 9. 15
신체조건: 178cm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라이트백
주 소속팀: AFC 아약스
A매치 기록: 49경기 17골
 

네덜란드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거론되는 선수로 강력한 체력과 넓은 활동 반경으로 공수 모두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이며 견고한 수비력과 준수한 득점력 또한 보유한 선수였다. 이러한 능력들을 바탕으로 아약스 시절 팀동료였던 스바르트는 네스켄스를 보고 그라운드에 2명이 있는 것 같았다는 극찬을 했다.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두 클럽에서 모두 에이스였던 크루이프의 보좌관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네스켄스는 아약스에선 유러피언 컵 3연패를 포함해 총 9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역사를 장식했고, 바르셀로나에선 구단의 암흑기를 지탱하며 코파 델 레이 우승과 컵위너스컵 우승을 이끌었다. 네스켄스는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돈 발롱 선정 라리가 베스트 11에 3회 연속 선정되었으며 75-76 시즌엔 돈 발롱과 문도 데포르티보 선정 라리가 MVP를 수상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도 중원의 엔진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며 1974년 서독 월드컵과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모두 결승진출을 이뤄냈고, 1974년 월드컵에선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됐다.
 


 

생년월일: 1963. 3. 21
신체조건: 181cm
포지션: 리베로, 중앙 미드필더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A매치 기록: 78경기 14골
 

네덜란드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인 선수로 골 넣는 수비수의 대명사와도 같은 선수이다. 센터백임에도 통산 253골을 기록할 정도의 파괴적인 득점력과 수비수의 기본 소양인 수비력도 준수하게 장착했으며 엄청난 킥력과 뛰어난 롱패스로 바르셀로나와 네덜란드의 후방 빌드업의 중심이었던 선수였다. 또한. 프리킥에도 능해 메시가 등장하기 전까지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다 프리킥골의 보유자였다.
 
PSV에서 트레블을 이뤄내며 화려한 역사를 쓴 뒤 바르셀로나에서 최전성기를 맞은 쿠만은 요한 크루이프 체제 드림팀 바르셀로나를 이끌며 라리가 4연패와 91-92 시즌 구단 첫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끌었고,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를 2회, 월드 사커 올해의 팀에 2회, 옹즈 드 옹즈에 4회 선정되었으며 93-94 시즌엔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수비진의 리더로 활약한 쿠만은 유로 1988에 참가해 조국의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생년월일: 1949. 3. 24
신체조건: 184cm
포지션: 레프트백, 리베로
주 소속팀: AFC 아약스
A매치 기록: 83경기 4골
 

1970년대 유럽을 대표하던 풀백 중 한 명으로 강력한 체력을 바탕으로 공수를 쉴 새 없이 오가며 영향력을 행사했고, 수비수의 기본 소양인 대인마크와 태클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또한, 좋은 킥과 준수한 테크닉을 겸비해 위협적인 오버래핑을 보여주었고, 무엇보다 전술 이해도가 훌륭했으며 좋은 수비력과 킥력을 바탕으로 리베로에서도 매우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아약스의 최전성기를 함께한 핵심 멤버로 풀백뿐 아니라 센터백이나 리베로에서도 맹활약하며 에레디비시 6회 우승과 전설적인 유러피언 컵 3연패에 큰 공헌을 했고, 1979년엔 발롱도르 3위에 랭크됐으며 월드 사커 올해의 팀에 2회, 옹즈 드 옹즈에 5회 선정되었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선 들어 올린 트로피는 없지만 개인의 활약은 매우 뛰어났는데, 토탈 풋볼의 핵심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며 1974 월드컵에선 조국의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고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선 풀백이 아닌 리베로로 맹활약하며 다시 한번 결승 진출을 이끈다.
 


 

생년월일: 1984. 1. 23
신체조건: 180cm
포지션: 라이트윙, 레프트윙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A매치 기록: 96경기 37골
 

2010년대 네덜란드를 대표하던 공격수로 빠른 스피드와 정교한 드리블과 탈압박, 그리고 뛰어난 패싱력과 우수한 볼터치를 두루 갖춘 당대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이었다. 특히나 뛰어났던 건 왼발 감아차기인데 측면에서 중앙으로 들어오며 구사하는 감아차기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으며 정말 알고도 못 막는다는 표현이 걸맞았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리베리와 함께 로베리 라인을 형성해 뮌헨의 공격을 이끈 로번은 뮌헨에서만 분데스리가 8회 우승과 DFB-포칼 5회 우승, 그리고 12-13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며 구단 첫 트레블을 이뤄냈다. 로번은 뮌헨 소속으로 2010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FIFA 월드 베스트 11에 1회, UEFA 올해의 팀에 2회,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선 3번의 월드컵과 유로에 참가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선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대회 최고 수준의 활약을 보여주며 팀을 4강에 올려놓았고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생년월일: 1947. 7. 3
신체조건: 180cm
포지션: 레프트윙, 포워드
주 소속팀: RSC 안데를레흐트
A매치 기록: 46경기 14골
 

네덜란드 역사상 최고의 윙어로 평가받는 선수로 1970년대 중후반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선수 시절 인간 뱀이라 불렸을 정도의 교묘한 드리블과 탈압박, 동료를 활용하는 연계 플레이와 날카로운 크로스, 그리고 미사일이라 불릴 정도의 강력한 킥력에 뛰어난 득점력까지 갖춘 완성형 윙어이다.
 
RSC 안데를레흐트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벨기에 리그를 말그대로 박살 내는 활약을 선보였는데, 리그 2회 우승과 벨기에컵 3회 우승을 이끌었고 유러피언 슈퍼컵에선 당시 최고의 클럽이던 바이에른 뮌헨을 꺾으며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2년 뒤에 펼쳐진 유러피언 슈퍼컵에선 리버풀을 꺾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렌센브링크는 안데를레흐트 소속으로 발롱도르 포디움에 두 번 선정되었고 월드 사커 올해의 팀에 2회, 옹즈 드 옹즈에 4회 선정되며 1970년대 하반기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도 가히 엄청나다고 할 수 있는데,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선 크루이프, 렙과 함께 공격진을 구성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결승 진출에 큰 공헌을 했으며, 크루이프가 빠진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선 본인이 에이스가 되어 엄청난 캐리를 선보이며 다시 한번 결승 진출을 이끌었고 도움왕을 수상했다.
 


 

생년월일: 1969. 5. 10
신체조건: 188cm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주 소속팀: 아스날 FC
A매치 기록: 79경기 37골
 

1990년대를 대표하는 포워드 중 한 명으로 우아하면서도 효율적인 볼터치가 트레이드 마크이며 뛰어난 패싱력으로 찬스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탁월하다. 또한 천재적인 축구지능으로 클럽과 국대 전술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동료를 돕는 이타적인 플레이에도 능하고 최상급의 테크닉까지 보유한 선수였다.
 
아약스에서 UEFA 컵 우승과 에레디비시 득점왕 3회를 달성한 베르캄프는 아스날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03-04 시즌 무패 우승을 포함해 프리미어 리그 3회 우승과 FA 컵 4회 우승, 그리고 05-06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발롱도르 포디움에 2회 선정됐으며 97-98 시즌엔 P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인 베르캄프는 유로 1992에 참가해 4강 진출을 이뤄내며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된 것과 더불어 그 해 발롱도르 3위에 올랐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조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생년월일: 1962. 9. 30
신체조건: 190cm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주 소속팀: AC 밀란
A매치 기록: 73경기 10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뛰어난 운동 능력과 강력한 체력을 모두 겸비한 괴물 같은 선수였으며, 당대 미드필더 중 최고 수준의 견고한 수비력은 물론 넓은 시야와 탁월한 패싱력, 거기에 온 더 볼과 볼키핑 능력도 갖추고 있어 공격적인 능력도 뛰어난 선수였다. 이러한 능력들을 바탕으로 센터백, 리베로, 박스 투 박스에서도 모두 최고 수준으로 플레이했다.
 
아약스와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아약스에선 에레디비시 5회 우승과 컵위너스컵 우승, 그리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AC 밀란에선 아리고 사키 체제 밀란의 중원을 책임지는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세리에 2연패와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끌었고 91-92 시즌엔 세리에 무패 우승과 함께 세리에 올해의 선수와 최우수 외국인 선수에 등극하였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도 오렌지 삼총사의 멤버로 활약하며 유로 1988에선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조국의 첫 메이저 대회 트로피와 더불어 개인으로도 대회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명성에 비해 아쉬웠는데 1990 월드컵에선 루디 푈러에게 침을 뱉는 행위를 해 퇴장을 당하며 15위로 빠르게 탈락했고 1994 월드컵에서도 브라질에게 3-2로 아쉽게 패배하며 8강에서 좌절하게 된다.
 


 

생년월일: 1962. 9. 1
신체조건: 191cm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골키퍼 제외 전 포지션
주 소속팀: AC 밀란
A매치 기록: 66경기 17골
 

1980년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압도적인 피지컬과 100m를 10초대에 주파하는 스피드, 경악스러운 점프력과 헤더 능력, 뛰어난 테크닉과 전술 이해도에 훌륭한 패싱력과 강력한 슈팅력, 우수한 수비력까지 겸비한 완벽한 선수였다. 이러한 능력들을 바탕으로 대다수가 알다시피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서 수준급으로 플레이할 정도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함께 멀티 플레이어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에인트호번과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전자의 클럽에선 리그 2연패를 이끌었고 네덜란드 올해의 축구 선수상을 수상했다. AC 밀란에선 반 바스텐, 레이카르트와 함께 오렌지 삼총사를 결성해 활약하며 세리에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1987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도 훌륭한 활약을 이어나갔는데, 1988 유로에 참가해 에이스로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고 조국의 첫 메이저대회 트로피를 이뤄내며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유로 1992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4강 진출과 함께 대회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생년월일: 1964. 10. 31
신체조건: 188cm
포지션: 스트라이커
주 소속팀: AC 밀란
A매치 기록: 58경기 24골
 

1980년대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발리슛과 훌륭한 헤더 능력을 보유해 선수 시절 매우 우아했던 공격수로 회자되며 킥의 정확도도 매우 훌륭했고 퍼스트 터치도 가히 예술이었다. 그리고 팀원들과의 연계 플레이에도 능해 스트라이커의 교과서라고 불린다.
 
아약스와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아약스에선 리그에서만 26경기 37골을 기록하며 유러피언 골든부츠를 수상하는 등 에레디비시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고, AC 밀란에선 세리에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를 달성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발롱도르만 3회를 수상했으며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2회, 월드 사커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선 유로 1988에서의 활약이 가장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데, 조국의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룬 것뿐 아니라 대회 득점왕도 수상했고 대회 올스타 팀에도 이름을 올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월드컵에선 유로에서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단 한번 출전한 1990 월드컵에선 16강에서 탈락하였고, 무득점에 그쳤다.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빨리 끝내게 된 것처럼 국대에서의 활약도 짧게 끝나고 말았다.
 


 

생년월일: 1947. 4. 25
신체조건: 180cm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주 소속팀: AFC 아약스
A매치 기록: 48경기 33골
 

유럽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당시 혁명과도 같았던 토탈 풋볼을 구현하는데 큰 공을 세운 선수로 뛰어난 전술안과 역대 반열에 손꼽히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으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환상적인 드리블과 뛰어난 득점력까지 보유했고, 팀 단위의 압박을 본인이 최전선에서 이끌 만큼 사령관으로서의 기질도 출중했다.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전자의 클럽에선 리누스 미헬스와 함께 토탈 풋볼 아약스를 이끌며 유러피언 컵 3연패라는 전설적인 업적을 이루었고, 그 후 미헬스 감독을 따라 바르셀로나에 입단한 크루이프는 첫 시즌 미친 활약으로 14년 만에 팀의 라리가 우승을 이루어 냈다. 크루이프는 아약스와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발롱도르만 3회를 수상, 월드 사커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는 등 프란츠 베켄바우어와 함께 1970년대 최강의 선수로 군림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선 들어 올린 트로피는 없지만 보여준 퍼포먼스는 역사에 남을 정도인데,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무려 36회의 기회 창출을 기록했고 토탈 풋볼을 바탕으로 네덜란드를 월드컵 결승으로 인도하며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우승팀인 서독의 베켄바우어를 제치고 대회 MVP와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당시 크루이프가 보여준 활약은 1986년 마라도나와 함께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활약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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