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앞서
- 작성자인 저의 주관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기록은 트랜스퍼마크트, 위키피디아, 해외 칼럼 등을 참고했습니다.
- 기록은 12월 21일 기준입니다.
- 피드백은 적극 환영입니다.
생년월일: 1928. 10. 8
신체조건: 174cm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주 소속팀: 보타보구
A매치 기록: 68경기 20골
1950년대를 풍미한 중앙 미드필더로 탁월한 축구지능으로 경기를 진두지휘했으며 결점이 없는 패싱력과 뛰어난 발기술로 경기를 지배했다.
플루미넨시와 보타포구에서 전성기를 보낸 지지는 전자의 클럽에선 팀의 5년만의 코파 리우 우승을 이끌었으며, 후자의 클럽에선 가린샤, 니우통 산투스 등과 함께 최강의 팀을 결성해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우승을 이뤄냈다.
브라질 대표팀에선 1958 월드컵에 참가해 18세의 펠레와 함께 맹활약하며 우승을 이뤄냈고, 1962 월드컵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월드컵 2연패를 달성했다.
생년월일: 1966. 1. 29
신체조건: 168cm
포지션: 스트라이커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A매치 기록: 70경기 55골
게으른 천재의 대명사이자 90년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천부적인 득점 감각과 절정의 테크닉을 겸비해 수많은 득점을 기록했던 골의 제왕이었다.
에인트호번과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전자의 클럽에선 에레디비시 3회 우승과 에레디비시 득점왕 3회, 유러피언 컵 득점왕 1회를 이뤄냈고, 후자의 클럽에선 라리가 1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 그리고 라리가 득점왕 1회를 기록했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도 절정의 기량을 선보인 호마리우는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대회 최고급의 활약을 선보이며 조국의 월드컵 우승과 함께 개인으로도 골든볼을 들어 올렸고, 그 해 FI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생년월일: 1972. 4. 19
신체조건: 186cm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A매치 기록: 74경기 35골
악마의 왼발의 대명사와 같은 선수로 선수 시절 슈팅이나 크로스 등 어떠한 상황에서도 왼발만을 고집했으나 그 왼발은 명실상부 당대 최고였으며, 피지컬이 큰 편임에도 매우 섬세한 드리블과 볼 컨트롤을 선보였다.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라리가를 평정한 후 바르셀로나에서 최전성기를 보낸 히바우두는 암흑기 바르셀로나의 압도적 에이스로 활약하며 라리가 2연패와 UEFA 슈퍼컵 우승을 이끌었고,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1회와 돈 발롱 선정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 1회 등을 수상했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 히바우두는 1999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의 1등 공신으로 활약했고, 클럽에서의 활약도 겹치며 트레블을 이룬 데이비드 베컴을 제치고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호나우두, 호나우지뉴와 함께 막강한 공격진을 형성해 조국을 정상으로 인도했다.
생년월일: 1921. 9. 14
신체조건: 169cm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주 소속팀: 플라멩구
A매치 기록: 53경기 30골
펠레 이전 세대 브라질의 아이콘이었던 선수로 예측 불허의 창의적인 패싱력과 테크닉으로 경기를 이끈 마에스트로였다.
당대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린 지지뉴는 플라멩구와 방구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전자의 클럽에선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우승을 이끌었고, 전성기가 지난 시점인 상파울루 시절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1회 우승을 달성했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선 194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함께 네 번의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우루과이에게 패배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지지뉴 개인으로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생년월일: 1953. 10. 16
신체조건: 183cm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주 소속팀: AS 로마
A매치 기록: 34경기 6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창의적인 두뇌와 패싱력으로 절정의 경기 조율을 보여주었으며 탁월한 테크닉과 수비력, 거기에 왕성한 활동량까지 겸비한 완벽한 육각형 미드필더였다.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1979년 무패 우승을 포함해 브라질 세리 A 3회 우승과 1979년 브라질 세리 A MVP를 수상한 파우캉은 로마에 입단해 적응기간 없이 곧바로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플라티니의 유벤투스를 제치고 세리에 A 우승을 달성했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선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 참가해 지쿠, 소크라치스, 세레주와 함께 황금의 사중주를 결성해 대회 최강의 전력을 갖추었지만, 아쉽게 4강에 머물렀다. 하지만 개인의 활약은 대단했기에 대회 실버볼을 거머쥐었다.
생년월일: 1980. 3. 21
신체조건: 181cm
포지션: 레프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A매치 기록: 97경기 33골
외계인이라 불린 2000년대 최강의 선수로 당대 최고의 드리블과 예측 불허의 개인기, 그리고 창의적인 패싱력을 선보인 선수였다.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낸 호나우지뉴는 암흑기에 빠진 바르셀로나를 구원하며 라리가 2연패와 챔피언스 리그 1회 우승을 이끌었고, 2005년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선 199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시작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호나우두, 히바우두 등과 함께 조국을 정상으로 이끌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됐다.
생년월일: 1933. 10. 28
신체조건: 169cm
포지션: 라이트윙
주 소속팀: 보타보구
A매치 기록: 50경기 12골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으로 소아마비로 인해 양다리의 길이가 다른 점을 이용해 본인만의 개성 있으면서 파괴적인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파괴했다.
보타포구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지지, 니우통 산투스 등과 함께 최강의 전력을 갖추어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우승을 이뤄냈고 해당 대회에서 MVP를 3회 수상했다.
가린샤는 특히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이 백미인데,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조국의 첫 우승을 이끈 것을 시작으로 팀의 에이스인 펠레가 부상으로 인해 중도 이탈한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선 에이스로서 팀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우승을 이뤄냈고 대회 득점왕과 골든볼을 수상했다.
생년월일: 1953. 3. 3
신체조건: 172cm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주 소속팀: 플라멩구
A매치 기록: 71경기 46골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결점이 없는 패싱력과 테크닉을 겸비했으며 양발을 활용한 슈팅력으로 미드필더임에도 파괴적인 득점력을 보여주었고 프리킥에도 능한 데드볼 스페셜리스트이다.
플라멩구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구단 최다 득점자 자리에 오른 지쿠는 플라멩구에서만 세리 A 3회 우승과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7회 우승,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인터컨티넨탈컵에선 유럽 챔피언인 붉은 제국 리버풀을 상대로 3대0 승리를 이끌며 유럽을 상대로 남미가 승리했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남미 올해의 선수상만 세 번을 수상한 지쿠는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선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무패 3위라는 성적을 거두는 등 비운을 겪었지만, 개인의 활약은 대단했기에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선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생년월일: 1976. 9. 27
신체조건: 183cm
포지션: 스트라이커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A매치 기록: 98경기 62골
축구 역사상 최고이자 최강의 스트라이커로 폭발적인 스피드와 파괴적인 드리블로 수비 라인을 붕괴시켰고 결점이 없는 슈팅력으로 수많은 골을 득점하며 경이로운 존재란 뜻의 페노메노라 불렸다.
데뷔 첫 시즌부터 브라질 리그를 씹어먹은 호나우두는 바르셀로나와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전자의 클럽에선 코파 델 레이 1회 우승과 컵위너스컵 1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7년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후자의 클럽에선 UEFA컵 1회 우승을 이뤄냈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도 경이로운 활약은 이어졌는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대회 골든볼과 준우승이란 성적을 거두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우승과 함께 대회 득점왕과 실버볼을 거머쥐었다.
생년월일: 1940. 10. 23
신체조건: 173cm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주 소속팀: FC 산투스
A매치 기록: 92경기 77골
메시와 함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축구 황제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코어러이자 드리블러이며, 플레이메이커였다.
은퇴를 번복하고 미국으로 가지 않았다면 산투스의 원클럽맨으로 남을 수 있었던 펠레는 구단 최고 황금기를 에이스로서 이끌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를 무려 10회 제패했으며, 전국 리그에서도 5연패와 함께 6회 우승을 달성했다. 또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회 우승과 인터컨티넨탈컵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1962년 인터컨티넨탈컵에선 유럽의 황제인 에우제비우가 이끄는 벤피카를 박살 내며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펠레가 이끌던 당시의 산투스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팀이었다.
역시나 펠레하면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18세의 나이로 참가한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선 오히려 본인이 에이스로서 팀을 이끌며 실버볼을 차지했고, 1962년 칠레 월드컵 우승과 더불어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선 역대 최강의 국가대표팀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팀을 결성해 전승 우승과 함께 대회 MVP를 거머쥐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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