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빛낸 선수들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 Top 10

세레브로 2023. 12. 3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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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에 앞서

 

  • 작성자인 저의 주관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기록은 트랜스퍼마크트, 위키피디아, 해외 칼럼 등을 참고했습니다.
  • 기록은 12월 30일 기준입니다.
  • 피드백은 적극 환영입니다.


 

생년월일: 1907. 1. 22
신체조건: 178cm
포지션: 스트라이커
주 소속팀: 에버튼 FC
A매치 기록: 16경기 18골
 

1930년대 잉글랜드 무대를 지배한 선수로 탁월한 득점 감각과 정밀한 헤더로 수많은 득점을 기록했으며, 훌륭한 테크닉까지 겸비한 선수였다.
 
에버튼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풋볼 리그 2회 우승과 FA 컵 1회 우승을 이끌었고, 풋볼 리그 득점왕을 두 번 달성했으며 27-28 시즌에는 리그에서만 60골을 기록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가공할만한 득점력을 뽐내며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2회 우승을 이뤄냈다. 여담으로 딘은 에버튼에서 등번호 9번을 달고 뛴 최초의 선수라 한다.
 


 

생년월일: 1940. 2. 20
신체조건: 173cm
포지션: 스트라이커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FC
A매치 기록: 57경기 44골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라 평해지는 선수로 작은 키를 보유했음에도 뛰어난 점프력을 활용한 강력한 헤더 능력을 겸비했으며, 뛰어난 위치선정과 다양한 슈팅 스킬까지 갖춘 선수였다. 특히 여타 다른 잉글랜드 스트라이커들과 다르게 드리블에도 강점이 있어 수비진에 균열을 내는 플레이도 선보였다.
 
잉글랜드 1부 리그 통산 최다골 기록을 보유 중인 당대 잉글랜드를 평정한 스트라이커인 그리브스는 첼시와 토트넘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토트넘에서 FA 컵 2회 우승과 컵위너스컵 1회 우승을 이끌었고, 풋볼 리그 득점왕을 총 여섯 번 달성했으며 1963년엔 발롱도르 3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전 스트라이커로 맹활약하며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3회 우승을 이끌었고,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도 참가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조별리그에서 낙마하여 우승을 함께 하진 못했다.
 


 

생년월일: 1937. 12. 30
신체조건: 183cm
포지션: 골키퍼
주 소속팀: 레스터 시티 FC
A매치 기록: 73경기 57실점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라 평해지는 선수로 훌륭한 위치선정을 통한 안정감 있는 선방을 보여줬으며, 정확한 판단력과 양발을 활용한 뛰어난 킥력, 그리고 강력한 카리스마을 활용한 수비 라인 조율 능력을 보여준 선수였다.
 
레스터 시티와 스토크 시티에서 전성기를 보낸 뱅크스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두 클럽에서 뛰었기에 우승 트로피는 많이 들어 올리지 못했지만, 두 클럽에서 풋볼 리그컵 우승을 각각 한 번씩 이루었고, FIFA 올해의 골키퍼에 여섯 번 선정됐으며 월드 사커 올해의 팀에 3회 이름을 올렸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선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단연 돋보이는데, 조국의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끌며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고, 유로 1968에도 참가해 3위라는 성적을 거두었으며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선 8강에 머물렀지만 조별리그에서 펠레의 완벽한 헤딩을 막아낸 선방은 전설로 남아있다.
 


 

생년월일: 1874. 1. 20
신체조건: 173cm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주 소속팀: 더비 카운티 FC
A매치 기록: 23경기 28골
 

초창기 잉글랜드 축구 무대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데이지 커터라 불린 낮게 깔리면서도 매우 강력한 슈팅으로 가공할만한 득점력을 선보였으며, 양발을 모두 능숙하게 사용했고 굉장히 민첩했으며 영리했다고 한다.

더비 카운티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풋볼 리그 득점왕을 5회 달성하는 등 당대 잉글랜드를 지배한 선수인 블루머는 더비 카운티 홈구장에 자신의 흉상이 제작되고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응원가가 구단 공식 응원가일 정도로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로 거론된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잉글랜드 최고 골게터의 모습을 보이며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3회 우승을 이루었다.
 


 

생년월일: 1975. 5. 2
신체조건: 180cm
포지션: 라이트윙, 중앙 미드필더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A매치 기록: 115경기 17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당대 최고 수준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오른발 킥을 이용한 크로스와 롱패스로 수많은 찬스를 만들었으며, 화려한 외모와는 상반되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영향력을 발휘했고, 넓은 활동 반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 가능한 선수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퍼기의 아이들' 중 가장 뛰어난 기량을 보인 베컴은 프리미어 리그 6회 우승과 FA 컵 2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98-99 시즌 역사적인 잉글랜드 구단 최초 트레블의 1등 공신으로 거론된다. 이 과정에서 베컴은 1999년 발롱도르에서 2위에 랭크됐으며 FIFA 올해의 선수 2위 2회, UEFA 올해의 팀 2회, 프리미어 리그 도움왕 3회, PFA 올해의 팀 4회, 옹즈 드 옹즈 2회 등에 이름을 올렸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다른 잉글랜드 선수들보다 더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인 베컴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콜롬비아전 그림 같은 프리킥골로 16강행을 이끌었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에이스로서 고군분투하며 8강 진출을 이뤄냈다.
 


 

생년월일: 1922. 4. 5
신체조건: 172cm
포지션: 레프트윙, 라이트윙, 포워드
주 소속팀: 프레스턴 노스 엔드
A매치 기록: 76경기 30골
 

1940년대 후반과 50년대 초반을 풍미한 윙어로 왼발잡이지만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양발을 모두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양발 가리지 않고 강력한 슈팅력을 선보였으며 빠른 스피드와 정교한 크로스를 보유했고, 작은 키와 어울리지 않은 뛰어난 헤더 능력으로 많은 득점을 뽑아냈다.

커리어 대부분을 약팀인 프레스턴 노스 엔드에서 보낸 핀니는 팀의 압도적 에이스로 맹활약하며 풋볼 리그 준우승 2회와 FA 컵 준우승 1회를 이뤄냈고, FWA 올해의 선수에 두 번 선정됐다. 피니가 은퇴하자마자 프레스턴 노스 엔드는 곧바로 강등을 당했고 현재까지 단 한 번도 1부 리그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며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10회 우승을 이뤄냈고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선 8강 진출을 이끌었다. 36세의 나이로 참가한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선 레프 야신을 상대로 PK 득점을 성공하기도 했다.
 


 

생년월일: 1951. 2. 14
신체조건: 173cm
포지션: 포워드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A매치 기록: 63경기 21골
 

1970년대 후반을 지배한 선수로 작은 체격을 상쇄시키는 민첩한 몸놀림과 테크닉을 겸비했으며, 중앙과 측면을 자유롭게 오가며 영향력을 행사했고 뛰어난 슈팅력과 플레이메이킹 능력까지 겸비한 만능 공격수였다.
 
리버풀과 함부르크에서 이름을 날리며 리버풀에선 풋볼 리그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1회 우승을 이끌었고, 75-76 시즌엔 FW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으며 PFA 올해의 팀에 두 번 이름을 올렸다. 함부르크에선 78-79 시즌 구단 최초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었고 79-80 시즌엔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발롱도르 2회 수상과 더불어 활약한 세 시즌 모두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이름을 올렸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선 클럽에서의 화려한 모습과는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는데, 1974년 서독 월드컵부터 1982년 스페인 월드컵까지 참가한 모든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경험했다.
 


 

생년월일: 1941. 4. 12
신체조건: 183cm
포지션: 센터백
주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A매치 기록: 108경기 2골
 

1960년대를 수놓은 당대 최고의 센터백으로 상대의 패스길을 미리 알고 차단하는 인터셉트는 무어의 최고 장점이었으며 신중하고 안정적인 수비력을 갖추어 파울이 정말 드물었다. 특히나 패스도 매우 뛰어났는데, 무어가 후방에서 한 번에 보내주는 롱패스는 클럽과 국대의 주요 공격 옵션이었다. 또힌, 팀을 아우르는 강력한 리더십도 보유한 완성형 센터백이었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구단의 FA컵 우승과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끌었고, 1970년엔 발롱도르 2위에 랭크됐으며 월드 사커 올해의 팀에 다섯 번 이름을 올렸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엄청난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해 25세의 나이로 주장 완장을 차 팀을 이끌며 조국의 첫 월드컵 우승에 큰 공헌을 했고, 유로 1968에선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여담으로 무어는 옐로/레드카드가 도입된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28경기에 출전했는데, 레드카드뿐 아니라 옐로카드마저 단 한 장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생년월일: 1915. 2. 1
신체조건: 175cm
포지션: 라이트윙
주 소속팀: 스토크 시티 FC
A매치 기록: 54경기 11골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윙어이자 30년 넘게 커리어를 보낸 롱런의 상징격인 선수로 절정의 기본기에서 발휘되는 화려한 드리블은 당대 따라올 자가 없었으며, 드리블 후 날카로운 크로스로 수많은 찬스를 만들어 낸 클래식 윙어의 표본이자 정상에 있는 선수이다.
 
스토크 시티와 블랙풀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며 스토크 시티에선 2부 리그 우승을 두 번 달성했고, 블랙풀에선 팀 자체가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했음에도 FA 컵 결승 진출 3회와 우승 1회, 그리고 55-56 시즌엔 풋볼 리그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 과정에서 FWA 올해의 선수에 두 번 선정됐으며 1956년엔 초대 발롱도르 수상자라는 영예를 누렸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전 윙어로 활약하며 브리티 홈 챔피언십 9회 우승을 이끌었고, 1958년 스위스 월드컵 예선에도 참가해 네 번의 경기 중 세 번 선발 출전하는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년월일: 1937. 10. 11
신체조건: 175cm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A매치 기록: 106경기 49골
 

잉글랜드를 넘어 영국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뛰어난 테크닉과 광활한 시야와 결점이 없는 패싱력을 통한 플레이메이킹은 절정에 다 달았고 펠레와 함께 당대 최고 수준의 양발 사용 능력을 겸비해 오른발, 왼발 가리지 않고 위협적인 슈팅과 패스들을 선보였다. 특히나 찰튼은 굉장히 헌신적인 선수라 늘 팀에서 가장 많이 뛰며 끊임없이 수비에 가담했고 수비력마저 뛰어난 완벽한 선수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커리어 대부분을 보내며 전성기를 누린 찰튼은 뮌헨 참사라는 비극적인 사고로 인해 무너져가던 왕조를 이끌며 풋볼 리그 3회 우승과 FA 컵 1회 우승, 그리고 67-68 시즌 구단 첫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고, 1966년엔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65-66 시즌엔 FW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길이 남을 업적을 세웠는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해 에이스로서 활약하며 결승전 서독을 꺾고 조국을 정상에 올려놓으며 대회 최우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고,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선 8강에 머물렀지만, 서독을 상대로 중원을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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