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빛낸 선수들

우루과이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 Top 10

세레브로 2024. 1. 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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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에 앞서

 

  • 작성자인 저의 주관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기록은 트랜스퍼마크트, 위키피디아, 해외 칼럼 등을 참고했습니다.
  • 기록은 1월 9일 기준입니다.
  • 피드백은 적극 환영입니다.


 

생년월일: 1987. 1. 24
신체조건: 182cm
포지션: 스트라이커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A매치 기록: 137경기 68골


2010년대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천부적인 득점 감각을 보유해 여러 슈팅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득점을 기록했고,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신체 능력을 활용한 파괴적인 온 더 볼과 동료와의 유기적인 연계 플레이에도 강점이 있는 만능 스트라이커이다.
 
리버풀과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리버풀에선 이렇다 할 우승컵을 들어 올리진 못했지만, 13-14 시즌 엄청난 활약으로 유러피언 골든슈와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PFA 올해의 선수를 모두 석권했고,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뒤엔 메시의 파트너로 활약하며 라리가 4회 우승과 트레블 1회를 이루었고, 이 과정에서 UEFA 올해의 선수 2위 1회, 유러피언 골든슈 1회, 라리가 득점왕 1회, 라리가 도움왕 3회를 수상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선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 중인 수아레스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해 포를란의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며 조국의 4강행에 공헌했고, 2011 코파 아메리카에도 출전해 우승과 함께 대회 MVP를 수상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생년월일: 1890. 6. 5
신체조건: 181cm
포지션: 포워드
주 소속팀: CA 페냐롤
A매치 기록: 49경기 22골
 

우루과이 축구 초창기 최고의 스타였던 선수로 높은 수준의 테크닉과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효율적인 플레이를 겸비했으며, 공격지역 전 포지션에서 모두 훌륭한 기량을 보인 마에스트로였다.
 
페냐롤의 원클럽맨인 피엔디베네는 엑토르 스카로네, 앙헬 로마노,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등이 소속된 당대 우루과이 최고의 팀인 클루브 나시오날을 제치고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총 13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서도 훌륭한 기량을 선보인 피엔디베네는 우루과이의 황금기를 이끌며 코파 아메리카 3회 우승을 이끌었고, 1920년엔 대회 MVP를 수상했다.
 


 

생년월일: 1917. 9. 20
신체조건: 183cm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주 소속팀: CA 페냐롤
A매치 기록: 45경기 9골
 

1940년대 세계 최고 수준의 3선 미드필더로 뛰어난 피지컬을 활용한 터프하면서도 견고한 수비력을 보유했으며, 정확한 패싱력과 이따금씩 선보인 대포알같은 중거리슈팅, 그리고 호세 나사치와 함께 우루과이 역대 최고의 주장으로 거론될 정도의 강력한 리더십도 갖춘 완벽한 미드필더였다.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와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원더러스에선 당대 우루과이 최고의 팀인 페냐롤과 나시오날에게 밀려 우승컵은 들어 올리지 못했지만, 팀이 3위 언저리의 성적을 유지하는데 큰 공헌을 했고, 페냐롤로 이적한 뒤에는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과 준우승 6회라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선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며 1942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해 우승과 함께 대회 MVP를 수상했고,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도 참가해 위기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리티로 선수들을 이끌며 기적 같은 우승을 이루었다.
 


 

생년월일: 1942. 12. 3
신체조건: 183cm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주 소속팀: CA 페냐롤
A매치 기록: 52경기 17골
 

1960년대 후반 세계 정상급 플레이메이커이자 남미내에선 펠레의 대항마로 활약한 선수로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필요한 덕목을 모두 최고 수준으로 갖추었다고 평가받으며, 득점력 또한 뛰어났던 완벽한 선수였다.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진두지휘한 로차는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우승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회 우승, 그리고 인터컨티넨탈 컵 2회 우승이라는 대업적에 큰 공헌을 했고, 브라질의 상파울루에선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득점왕과 전국리그 베스트 11에 한 번씩 이름을 올렸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서도 팀의 플레이메이커이자 에이스로 활약하며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대회 MVP에 선정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생년월일: 1961. 11. 12
신체조건: 181cm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주 소속팀: CA 리버 플레이트
A매치 기록: 73경기 17골
 

지네딘 지단의 우상으로도 유명한 1980년대와 90년대 세계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화려하면서도 실속을 겸비한 드리블과 우아한 볼 컨트롤, 그리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창의적인 패싱력과 아르헨티나 리그 득점왕을 수상할 정도의 득점력까지 겸비한 트레콰르티스타의 이상향인 선수이다.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아르헨티나 무대를 평정한 프란체스콜리는 85-86 시즌에 팀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끌었고, 전기리그 3회 우승과 후기리그 1회 우승, 그리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회 우승을 이뤄냈다. 이 과정에서 남미 올해의 축구선수에 두 번 선정됐고,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 3회, 남미 올해의 팀에 4회 이름을 올렸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서도 훌륭한 기량을 뽐낸 프란체스콜리는 총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는데, 이 중 1983 코파 아메리카와 1995 코파 아메리카에서 대회 MVP에 선정되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생년월일: 1925. 7. 28
신체조건: 175cm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주 소속팀: CA 페냐롤
A매치 기록: 21경기 8골


1950년대 세계 정상급 인사이드 포워드로 절정의 테크닉과 넓은 시야, 그리고 창의적이면서도 정교한 패싱력으로 경기를 쥐락벼락한 천재이다.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에이스로서 팀의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과 토르네오 데 아너 7회 우승을 이끌었고, 1949 시즌엔 무패 우승을 달성하기도 하며 당대 남미 무대를 평정했다. 그 후 이탈리아의 AC 밀란으로 이적한 스키아피노는 밀란에서도 세리에 A 3회 우승과 라틴 컵 1회 우승, 유러피언 컵 준우승 1회라는 업적을 이루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서도 훌륭한 기량을 이어나가며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도 참가해 4강 진출이란 성적을 거두었다.
 


 

생년월일: 1901. 5. 24
신체조건: 182cm
포지션: 센터백
주 소속팀: 베야 비스타
A매치 기록: 41경기 0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압도적인 피지컬과 영리한 위치선정을 활용한 터프하면서도 지능적인 수비력으로 공격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다. 그의 경이로운 수비력을 두고 우루과이의 소설가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X선조차 그의 수비를 뚫지 못할 것이다.'라 말하며 찬양했다. 나사치의 또 다른 진가는 바로 리더십인데, 축구 역사상 최고의 주장 중 한 명이라 평가받을 정도로 강력한 리더십을 보유해 위대한 사령관이란 별명이 붙여졌다.
 
다른 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체이던 베야 비스타에서 전성기를 보낸 나사치는 수비수임에도 엄청난 하드캐리를 선보이며 팀을 지탱했고 웬만한 상위권의 팀들과 맞먹는 수비지표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나사치가 나시오날로 떠난 뒤 베야 비스타는 리그 꼴찌를 기록하며 무너졌고, 반대로 나사치가 입단한 나시오날은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과 함께 1933년엔 리그에서 단 10골 만을 실점하는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서도 그의 경이로운 활약은 계속 되었는데, 당대 슈퍼팀이었던 우루과이의 수비를 이끌며 월드컵 이전 최고의 대회였던 올림픽을 두 번 우승했고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네 번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수비수임에도 1923년과 193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MVP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초대 월드컵인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도 출전해 우승과 함께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생년월일: 1901. 11. 22
신체조건: 180cm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라이트백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A매치 기록: 34경기 1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라 평가받는 선수로 경이로운 신체능력과 우월한 테크닉을 갖추었으며, 광활한 시야와 경기를 읽는 우수한 전술안까지 더해져 혼자서 중원과 우측면을 지배하며 경기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선수였다.
 
측면과 중원을 오가며 현대식 풀백과 비슷한 플레이를 선보인 안드라데는 우루과이의 두 양대산맥이자 라이벌인 나시오날과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두 클럽에서 각각 프리메라 디비시온 1회 우승을 이뤄냈다.
 
안드라데는 무엇보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이 단연 돋보이는데, 월드컵 이전 최고의 국제대회였던 올림픽을 두 번 우승했으며 코파 아메리카를 세 번 우승했고, 초대 월드컵인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도 참가해 조국에게 첫 월드컵 우승국이란 타이틀을 선물했으며, 대회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생년월일: 1893. 8. 2
신체조건: 174cm
포지션: 포워드, 레프트윙, 전 포지션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A매치 기록: 70경기 28골

 
1910년대와 20년대를 걸쳐 활약하며 우루과이의 황금기를 이끈 공격수로 우수한 드리블과 찬스메이킹 능력을 보유했으며, 특히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가 엄청나 골키퍼를 포함해 전 포지션을 소화가능했던 최고의 토탈 플레이어였다.
 
엑토르 스카로네와 함께 나시오날의 공격을 이끌며 전성기를 보낸 로마노는 1915년 전설적인 5관왕을 포함해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우승과 코파 데 아너 3회 우승, 코파 데 콤페텐시아 4회 우승을 이끌었고,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맞대결인 코파 알다오에선 세 번의 우승을 이루어냈다. 또한, 나시오날은 리그가 취소된 이후 유럽 투어를 다니게 되었는데, 이때 로마노는 가공할만한 기량을 선보이며 26승 7무 5패의 성적을 거두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졌는데, 조국의 황금기를 이끌며 1924년 파리 올림픽 우승을 이뤄냈고, 코파 아메리카에선 득점왕 2회를 포함해 무려 여섯 번이나 우승하며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은 코파 아메리카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 중이다.
 


 

생년월일: 1898. 11. 26
신체조건: 171cm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A매치 기록: 51경기 31골
 

우루과이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라 칭송받는 선수로 인사이드 포워드가 갖추어야 할 모든 덕목을 최고 수준으로 갖추었으며, 우수한 골결정력에서 발휘되는 뛰어난 득점력과 필요시에 중원으로 내려와 연계 플레이를 주도하기도 한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였다.
 
나시오날에서 남미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린 스카로네는 에이스로 활약하며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우승과 준우승 7회, 코파 데 아너 2회 우승, 코파 데 콤페텐시아 3회 우승을 이끌었고,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맞대결인 코파 알다오에선 세 번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총 22개의 트로피를 구단에게 안겨주었다. 26-27 시즌엔 한 시즌 간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로 임대를 가 코파 델 레이 우승에 공헌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선 조국의 황금기를 이끈 여러 선수들 중에서도 1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데, 1917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우승과 함께 득점왕과 MVP를 거머쥐었고, 총 네 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월드컵 이전 최고의 대회였던 월드컵에서 두 번의 우승을 이뤄냈다. 초대 월드컵인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도 출전해 대회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리는 퍼포먼스를 보이며 조국에게 월드컵 초대 우승국이란 타이틀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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